곱씹어 뱉거나, 곱씹어 삼키거나

평론도킴2017. 10. 8.

  도킴(Do Kim)의 작품 〈Kaugummi〉는 흑백의 화면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껌의 포장지를 벗기고, 껌을 입에 넣는 것으로 영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인물들은 껌을 씹는다. 곧 그것을 늘이기도 하고, 풍선을 불기도 하고, 뱉기도 한다. 뱉었던 껌을 다시 씹기도 하고, 심지어 씹던 껌을 타인에게 번갈아 주고받으며 씹기도 한다. 그리고 껌을 뱉거나 삼킴으로써 영상은 마무리가 된다.

  껌을 씹는 목적은 입 안의 냄새를 없애기 위함이거나, 졸음을 쫓기 위해서라든지, 긴장의 이완 혹은 스트레스 해소에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목적이 의학과 관련된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로 심심풀이로 씹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기호적인 성향의 ‘껌’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비유를 나타내곤 한다. 아주 싼 가격을 표현할 때, 어떠한 일에 대해 쉬웠다고 평가할 때, 누군가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를 지칭할 때 등 다양한 비유적 표현이 존재한다. 단편적인 비유 몇 가지만 생각해도 알 수 있듯이 이 ‘껌’이라는 비유는 긍정적인 느낌보다 부정적인 느낌이나 비하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일단 두 가지의 요소를 들어 분석해볼 수 있겠는데, 먼저 기본적으로 껌이라는 사물 자체가 생존을 위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나 취향에 의해 소비되는 것, 즉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가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형식, 다시 말해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형식이 아니라 씹고 뱉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때문에 ‘배타적인, 혹은 부분적 수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관계

  일상에서 사람들은 심심풀이를 위한 소소한 주제나, 중요한 일과 관련된 진중한 주제 등 다양한 대화들로 하루를 채운다. 하지만 대화에 있어 전제되는 것은 주체와 객체라는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사회구성원으로써 최소 단위인 가족이라는 관계부터,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 사회적 지위에 따라 나타나는 수직적 관계, 혹은 일방적인 관계 등 여러 종류로 나타난다. 이렇게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 관계 중 대부분은 수직적 혹은 배타적인 관계가 차지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이러한 수직적 혹은 배타적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수평적 관계를 욕망한다. 하지만 이 욕망이 때로는 ‘나눔’, ‘배려’, ‘친절’, ‘이해’ 등의 이름으로 강요나 폭력의 양상으로 표출된다.

폭력

  관계 맺음은 인정과 소통을 지향하나 전제 조건인 평등적 관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 순간 서로의 위치가 역전되는 현상이 있을지라도 불평등한 관계를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폭력성을 띄고 있다고 했으며, 반두라(Albert Bandura 1925)는 사회적, 즉 관계에 있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거나 유지, 쟁탈하기 위해 폭력이 가해진다고 말했다. 타자, 다시 말해 다름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환대가 요구되지만 관계는 우리를 적대적 상황으로 이끈다.

대답 그리고

  폭력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대답을 얻어낸다. 이 대답은 자발적 호응의 목소리 일 수도 있고, 침묵일 수도 있으며, 무기력한 수용일 수도 있다. 여기서 적의가 강하게 드러나면 거부나 저항을 통해 상호 폭력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대답,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대답들은 각각의 적합한 방식의 해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반복적으로 곱씹는 껌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반복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드러난다.

  담담히 씹어대는 껌 속에 도킴은 얼마나 많은 장치들을 숨겨뒀을까. 영상에서 던져진 행위들에 대한 해석의 조건들은 무수히 많이 있다. 남자, 여자, 시선, 벗김, 씹음, 타액, 뱉음, 삼킴, 끊음, 반복, 버림 등등. 하지만 도킴은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거나 단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숨은그림찾기’나 ‘낱말 맞추기’와 같은 놀이의 진행자 입장으로서 접근한다. 그리고 이 놀이 속에서 곱씹어지는 것들은 관객 스스로의 삶에 관계된 사유들일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곧 이 놀이의 정답이 된다. 정답을 맞춤으로써 심심풀이 놀이를 끝낸 관객은 영상이 끝나는 장면처럼 〈Kaugummi〉를 통해 사유한 그 곱씹은 ‘껌’을 뱉거나 삼키게 된다. 도킴은 이번 전시 ‘삶, 풍경의 조건’이라는 명제에 대해, 대답이 아닌 물음으로, 그리고 놀이로써 관객들과 함께 곱씹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