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開花)

평론김리아2024. 1. 25.

한국은 전통과 현대를 잇고자 하는 움직임을 오래전부터 보여왔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는 2000년 전후를 기점으로 ‘다시’ 전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풀어보면, 일제 강점기 시기인 1910년부터 2000년대까지 거의 100여년이라는 시간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전통을 배제해왔었다. 그 시작은 알다시피 강제적인 탄압으로 시작되었으나, 해방 이후에도 경제성장을 목표로 최대한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개량 및 개발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즉, 우리의 것은 진부하고 낡은 것, 반대로 ‘미제’, ‘일제’와 같은 단어들은 우수함을 증명하는 듯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반도체, 가전, 자동차, 휴대폰 등의 산업뿐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한국의 시장은 스스로의 가치와 전통을 다시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예술에서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대 예술계에서 전통과 현대(기술)의 교차점은 우리의 삶에 있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현대, 동시대’를 전통과 비교할 수 있는 매체는 백남준(19322006), 볼프 포스텔(Wolf Vostell 19321988), 박현기(19422000)와 같은 예술가로부터 비롯하여 1960년대에 등장한 비디오 아트(뉴미디어)일 것이다. 이를 초석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과 함께 디지털 도구의 접근이 용이해짐에 따라 다양한 디지털 형식의 작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이이남(1969)과 같이 과거(전통)와 현재를 잇는 시도의 작품들이 등장함에 따라 전통에 대한 가치를 동시대에 맞춰 다시 재해석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은 태생적 차이로 인하여 문화적 가치 보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함의한다. 디지털 매체는 혁신을 허용하지만 원본 자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거나 상업적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전통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한 미묘한 균형을 맞추며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 프로젝트가 ‘개화(開花)’이다. 김리아, 김부민 작가가 구성한 프로젝트는 민화, 미디어 아트, 일러스트레이션, AI음악 등을 결합하여 구성되었는데, 대구시와 군위군이 통합되는 역사적 사건을 목도한 예술가들이 두 지역 간의 평화로운 유대 그리고 연대를 잇기 위한 시도이다. 각 지역의 랜드마크를 전통과 디지털매체 그리고 AI라는 이질적인 매체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메타포로써 던지는 메시지이다. 비슬산 봉오리에서 개화하는 꽃으로부터 각각 지역을 상징하는 3D, 2D의 물고기가 만나 용으로 변하는 것은 두 지역의 통합에 대한 은유를 더 깊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민화의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연상케하는 구도 또한 이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의 지형, 날씨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기술을 활용하여 작곡한 음악은 프로젝트의 깊이를 더한다. 또한 ‘개화(開花)’ 프로젝트가 상영되는 공간 역시도 주목해야 한다. 작품은 보편적인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대구 동성록 중심부인 ‘스파크랜드’ 외벽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민화가 고위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성을 띤 그림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대구시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의 상영은 메시지의 맥락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개화(開花)’ 프로젝트는 전통이 지니는 본질적인 특성에 대한 연구가 디지털 미디어라는 매체로 전이되면서 전통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한, 즉 전통과 현대를 이어 대중들과 호흡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태도를 겸한 프로젝트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더 다양한 서사를 구축할 수 있게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디지털 영상 작품의 창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보존, 지역 정체성의 고양,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는 대중(관객)에게도 우리 삶의 변형 가능성을 포용하는 동시에 전통의 본질을 보존할 수 있도록 상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