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을 바라보는 예술
평론정민규2020. 6. 11.
우리는 언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유하고, 여러 범주들을 구성하여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예술은 그 속에서 여타 분야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그 범주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고 마침내 예술은 범주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주를 벗어난 시간은 잠시였고, 우리는 곧 새로운 언어체계와 사유들이 벗어난 예술을 형식화하여 범주화시켰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작가들의 생태계에는 ‘레지던시’라는 새로운 틀이 더해졌다. 레지던시, 즉 기관은 작가들을 여러 형태로 지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들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맞춰 재단한다. 작가들은 이러한 이면적 구조에서 스스로의 작업세계를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까.
정민규 작가는 이러한 이면적 모습과 언어체계 속의 예술적 한계에 대한 지점을 작업을 통해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현대인의 모습-예술가의 초상〉에 등장하는 피사체는 정민규 작가와 함께 레지던시 생활을 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정민규 작가는 일련의 질문을 했고, 질문을 받은 작가들은 각각의 모국어를 몸에 새기는 방식으로 대답하였다.
이러한 작업 과정과 작업은 동시대 예술의 한계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하나의 프로그램(혹은 기관)과 서로 다른 언어는 예술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지만, 하나의 형식으로 범주화될 수 없는 간극을 지시하고 있다. 이렇게 지시된 지점이 어쩌면 예술이 그토록 벗어나려 하는 탈출구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민규 작가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우리의 초상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동시대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성되나?
인간은 언어라는 틀 속에서 사유한다.
그 사유는 예술적 제한이지 않을까
과거 많은 전위적 예술가들은 기존의 틀을 부수려고 했고 단편적으로는 성공했을 지라도 결과적으론 그마저도 틀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예술을 표현하는 언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대 작가들은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100년 전의 예술가보다 더 틀 속에 갇혀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작가들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생겼기 때문이다.
레지던시, 혹은 기관에서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한편, 작가들을 재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작업을 해야하나
이러한 질문을 정민규 작가는 <현대인의 모습-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질문한다.
오늘날 우리는 언어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지했고, 일련의 이유로 사회적 속박까지 묶여있는 예술가들은 오늘날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가
정민규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