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O W H E R E
서문N O W H E R E2025. 6. 7.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어떤 작품은 사회를 향해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더듬으며 작은 균열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작품은 삶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추상적 사유에서 비롯되기도 하며 그 표현이 때로는 선명하고 때로는 모호하여 직접적이거나 우회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일상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은 많은 예술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술은 대상을 낯설게 하거나 인식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감각을 느리게 하는 등의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대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비일상성이 도리어 예술을 사회의 중심이 아닌 비껴난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예술이 일상과는 다른 위치에서 작동할 때 우리는 예술이 멀게만 느껴지거나 나와는 상관(의미) 없는 매체로 인식하게 됩니다.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을 것처럼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 예술은 바로 그 '어디에도 없음(nowhere)'의 상태에서 우리의 일상에 시나브로 자리합니다. 그렇게 예술은 당장에 결과를 요구받거나 해결해야 하는 과제 바깥에서 우리의 세계를 주류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감정이나 감각들, 지나친 관계, 잊힌 서사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레지던시 연합 교류전, 《N O W H E R E》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레지던시들의 '교류전'의 형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과 환경에서 작업해 온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지점은 새로운 관계와 서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가 됩니다. 레지던시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장소에 머무르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작업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때문에 전시는 그 시간 속에서 생성된 경험을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충돌하게 되는지를 탐색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 《N O W H E R E》가 어떤 단일한 주제를 설명하거나 명확한 해석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곳(now here)'에서 어떤 감정과 관계, 삶의 경험과 감각이 드러날 수 있을지를 질문합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와 마주해 왔고 각자의 속도로 이를 응시하고 표현해 왔습니다. 전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선들이 한 공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웃하고 새로운 문장을 구성할 수 있을지를 실험합니다. 전시는 모두 아홉 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섹션은 작가들을 특정한 주제로 범주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제와 메시지가 어떤 맥락 속에서 맞물릴 수 있을지를 탐색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어떤 작품은 다른 전시에서 전혀 다른 주제 아래에서 해석될 수 있을 만큼 이 구분은 유동적이고 열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의 섹션 구성은 작품 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장치이며 작품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교차되어 생성되는 서사의 흐름을 상상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전시는 이 섹션 간의 흐름을 따라 단방향(one-way)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구조 속에서 각 작품을 단독적으로도 감상할 수 있지만 동선에 따라 마주하게 되는 작품 간에 교차되는 질문들을 겹쳐 사유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 간의 서사는 관객과 만나 겹쳐지기도 비껴가기도 하며 하나의 정해진 해석을 넘어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는 해석의 가능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옥상 정원입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작품은 없지만 도시의 풍경과 수많은 창문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과 대구의 뜨거운 온도 그리고 푸른 정원이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앞선 섹션들에서 펼쳐졌던 작품들의 관계적 서사는 이곳에서 도시의 수많은 창과 시선 속에 포개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선은 감시와 환대 사이를 오가며 존재를 응시하고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관객의 위치를 다시금 질문합니다. 비일상적 공간인 전시장에서 서사를 드러내던 작품은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지만 전시를 통해 생성된 사유들은 바로 여기, 일상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자아
《N O W H E R E》는 ‘나’라는 단어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아는 흔히 고유하고 일관된 정체성으로 이해됩니다. 스스로를 독립된 주체로 상정하거나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내부의 어떤 실체로 단순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자아가 놓인 조건과 환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자아의 구성은 먼저 신체로부터 기인합니다. 신체는 자극, 반응, 접촉 등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수용하고 자신의 자아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자아가 스스로를 신체적 구조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아는 외부로부터 수용된 정보들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이는 이후 정체성을 구성하는 초석이 됩니다. 여기에 시간, 기억, 언어, 사회적 구조가 더해지며 자아는 더 복잡한 구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불러오고 시간은 그 경험에 해석을 더하며 언어는 자아를 설명하는 도구가 됩니다. 사회적 제도와 타인의 시선은 자아의 외부 경계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특정한 역할과 기대를 지속적으로 설정합니다. 그래서 자아는 다양한 조건들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맥락 속에서 구성되며 고정된 형태가 아닌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자아는 경험과 조건이 바뀔 때마다 그 위치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정체성은 완결된 무엇으로 설명되기보다는 구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아는 반복적으로 형성되고 다시 해석되어 이러한 유동성 자체가 자아가 지속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됩니다.
이 섹션이 전시 《N O W H E R E》의 서두에 배치된 것은 이후 이어지는 모든 섹션이 이처럼 유동적이고 관계적인 자아 개념을 기반으로 외부 조건과 환경을 확장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시 또한 자아를 고정되거나 고립된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자아가 놓인 조건들을 통해 주체와 세계 사이의 구조를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맥락을 전개합니다. 작가들의 작품 역시 고정되거나 확정된 무언가를 전제하지 않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가 구성되고 재정의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물
'자아'로부터 출발한 전시는 주체의 내부 구조를 탐색하는 데서 시작해서 점차 외부 조건들과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이 흐름 속에서 '사물'은 주체가 외부 세계와 처음으로 접촉하는 지점을 형성합니다. 여기서는 사물을 주변에 놓인 기능적 대상으로써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가 스스로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조율하는 첫 번째 조건이자 외부 환경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게 하는 접점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사물은 언제나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지만 특정한 목적에 따라 소모되거나 무심히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놓인 위치나 주체와 맺는 방식에 따라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입니다. 표면의 질감이나 무게, 사용했던 흔적과 같은 물리적 속성은 우리 몸과의 접촉을 통해 경험되고 이렇게 반복되는 행위(사용)는 사물 위에 시간의 흔적을 남깁니다. 이러한 흔적은 사물을 새로운 관계 속으로 다시 배치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사물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만듭니다.
동일한 사물이라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배치의 변화, 주체의 태도, 시간의 흐름은 사물의 쓰임을 바꾸기도 하며 그에 따라 우리의 반응이나 의미 구성도 함께 달라지게 됩니다. 사물은 고정된 기능을 수행하는 수단이기보다는 구성된 관계 속에서 해석의 조건을 유도하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몸의 움직임, 공간의 구조, 사회적 규범 같은 다양한 요소들과 얽혀 있기에 주체와 주변을 연결하는 경로가 됩니다.
이 섹션 또한 사물을 고정되거나 보편적인 통념에서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그 의미가 열려 있는 상태를 전제로 대상을 탐색합니다. 그래서 사물은 하나의 대상이라기보다 구조를 매개하는 단위로 작동하며 반복과 접촉, 저항과 응답의 과정을 통해 작품 간의 맥락을 조율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주체는 더 이상 자기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 조건에 접촉하며 구성의 경계를 넓혀 갑니다. 관계가 겹쳐지는 조건으로서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사물 또한 자아와 마찬가지로 고정되지 않은 존재적 위치에서 주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그 위치를 질문합니다.
경계
'사물'이 외부 조건과의 접촉을 구성하는 단위였다면 '경계'는 그 접촉이 발생하는 조건과 구조를 조율하는 지점입니다. 여기에서 경계는 구획이나 분리의 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구조와 감각이 만나는 접점임과 동시에 관계가 발생하고 조율되는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전시는 이 지점에서 관계의 형성과 공간의 배치, 역할의 분포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논의합니다.
경계는 보편적으로 선명함과 흐릿함 사이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분리보다는 결합(수용), 고정보다는 유동을 강조하는 접근 방식이 보편적이지만 그 반대의 조건 역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경계를 명확히 설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는 방식입니다. 불확실한 접촉보다는 명확한 구획이 더 안정적인 관계 형성의 조건이 되기도 하며 이로써 주체와 객체 간의 허용 지점 또한 더욱 분명히 조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계는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위치가 달라지면 작동 방식도 달라지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율될 수 있는 조건도 변하게 됩니다. 제도와 사회적 시선, 언어와 규범은 경계를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어떤 것은 안쪽에 포함시키는데 반해, 또 다른 어떤 것은 바깥으로 밀어내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경계는 단일하게 공간이나 관계에 선을 긋는 태도를 넘어 존재의 위치와 정당성을 구성하는 사회적 구조로 읽히게 됩니다.
경계는 긋거나 지워지기보다는 다시 그려지는 구조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조율 가능성과 유동성을 전제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시는 이러한 측면에서 경계를 하나의 구획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 우리의 위치를 사유하게 하는 전제로 다룹니다. 경계는 주체가 놓인 공간, 그 안에서의 배치, 그리고 타자와의 거리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경계라는 단어의 속성 상 안과 밖, 주체와 타자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전시는 중심과 주변, 허용과 제한, 침투와 반응이라는 보다 복합적인 맥락들을 읽어 내려 시도합니다. 이를 통해 주체의 위치는 다시 질문되고, 주체와 타자 간의 거리는 다시 조율됩니다.
일상
'일상'은 반복되는 행동과 익숙함 속에서 형성됩니다.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일정한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반복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며 우리를 예측 가능한 구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복은 결코 동일하게 재현되지 않습니다. 사소한 변화나 미세하게 어긋나는 일들이 축적되면서 일상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화되고 완전히 다른 방식의 질서나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일상은 늘 똑같이 반복되는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내장하고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맥락적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다루었던 자아의 구성, 외부 세계와의 관계, 경계의 설정은 이러한 반복의 구조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시간 혹은 날씨로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나 주변 환경의 미묘한 변화, 같은 일을 반복하는 와중에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와 기억은 자아의 위치를 다시 점검하게 만들고 어떤 대상과의 관계의 조건을 조율하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이나 반응은 겉으로는 일견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매 순간 달라지는 수많은 조건들이 겹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반복은 단순하게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이해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상은 전환으로의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일상은 일정한 질서를 전제로 유지됩니다. 이 질서는 개인이 구축하고 축적한 경험, 생활 습관, 사회적 기대 혹은 규범 등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스스로를 어떤 위치에 배치시키고 반응하는지를 끌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몸의 움직임, 공간의 사용 방식, 감정의 파생 등은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교란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사물, 시간, 감정, 사회적 역할 사이의 구성을 재조율합니다. 그래서 일상의 구성 요소들은 각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일상적 구조를 똑같이 재구성되거나 고정된 형식으로만 해석되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번 섹션은 이러한 일상의 반복을 통해 구성되는 해체와 조립의 과정에 주목합니다. 일상은 삶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작은 어긋남과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틈은 새로운 관계의 형성이나 방향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전시 또한 이러한 구조를 따라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며 익숙한 삶의 흐름 안에서 다른 가능성을 여는 방식들을 제안합니다.
기억
반복된 삶의 경험이 시간에 남긴 흔적들로부터 구성된 삶을 되짚는 조건으로 기억은 작동합니다. 기억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발생된 상황과 감정 그리고 그때의 반응을 통해 지금, 여기의 삶 안에 다시 소환됩니다. 다시 말해, 기억은 자아의 형성과 외부와의 접촉, 그 사이에서 발생한 경계와 일상의 반복이 응고되거나 분해되는 지점을 형성합니다.
기억은 일반적으로 경험이나 생각의 저장 그리고 회상이라는 선형적인 작동 방식으로 설명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의 맥락에 따라 재구성되는 가변적 작동 방식에 가깝습니다. 동일한 경험이라 해도 장소나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기억은 삶의 방향이나 위치 또한 재조정하게 하는 가능성이 됩니다. 기억은 언제나 과거에서 현재를 경유하여 작동하기에 눈앞의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의 조건으로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억은 단편적인 이미지나 인상으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특정한 장면보다 색감이나 소리, 냄새처럼 감각 정보가 더 선명히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의식하지 않아도 불쑥 떠오르기도 하며 정서적 반응과 결합해 현재의 맥락을 흔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기억의 작동은 선형적이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점들이 중첩되거나 충돌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억은 과거에 속해 있는 정적인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유동적인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이번 섹션에서 마주하게 될 작업들은 정리된 서사보다 중첩된 인상, 일관된 흐름보다 충돌하는 조각으로 구성된 기억의 구조와 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혹은 구성되고 있는) 삶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내는지를 탐색하며 기억의 선택과 망각이 어떻게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지를 질문합니다. 전시는 기억을 개인의 감정으로 축소하지 않고 사회적 위치, 언어, 이미지의 배치 속에서 다양한 의미와 조건을 흔드는 장치로써 전제합니다.
가상
기억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험과 사유에 따라 재구성되었다면 '가상'은 그 기억조차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인식의 구조 자체를 다시 묻는 지점에 놓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상'이라는 단어를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가상공간, (가상)캐릭터처럼 '가상'이라는 개념은 기술과 연결된 용어로 일상화되어 있지만 원래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 혹은 실재하지 않지만 인식 가능한 세계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번 섹션은 기술적 가상이 만들어낸 세계뿐만 아니라 상상과 관념, 믿음과 감각이 형성한 전통적인 가상까지 아우르며 오늘날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탐색합니다.
과거의 '가상'은 현실을 대체하거나 흉내 내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구성하고 믿음을 통해 감각되는 장소를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공간이나 개념은 종교, 신화, 철학적 사유 속에서 더욱 풍부하게 구축되었음을 우리는 주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상은 현실의 부족함을 메우거나 현실과 다른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상상적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시각적 환영, 내면화된 서사, 개별적인 감각과 같은 동시대적 가상의 구조를 우리는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기술과 정보 구조 속에서 또 다른 '가상'의 조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데이터, 인공지능, 시뮬레이션 등으로 구성된 이 새로운 맥락은 환영을 넘어 현실을 재편하고 해석하는 적극적인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는 이미지의 배열, 정보의 필터링, 선택과 강조의 방식으로 현실을 구성하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구분을 흐리게 만듭니다. 아니 이제 가상은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구조 자체에 개입하는 존재 방식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상의 조건은 존재의 방식과 관계 맺기의 형식을 변화시킵니다. 디지털 존재, 타자화된 몸, 감정의 불일치와 같은 요소들은 모두 비가시적 구조 안에서 구성된 가상의 작동을 보여줍니다. 가상은 이제 인간의 지각만으로 구성되거나 이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술적 환경과 인식적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조율의 과정이 기존의 관계, 정체성, 위치를 흔들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 존재의 위치까지도 다시 사유하게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전시는 이러한 변화된 구조 속에서 가상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재조정하고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생태
'기억과 가상의 조건이 현실의 구조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 외부에 놓인 다양한 존재들과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여기서 '생태'는 자연을 구성하는 사전적 개념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환경,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히는 방식 자체를 사유하게 하는 지점에 놓입니다.
생태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지점은 보편적으로 자연 보존이나 환경 문제에 국한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지만 더 깊이 고민해 보자면 존재들이 서로 얽히는 방식 그리고 그 얽힘이 지속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존재는 독립된 실체로 홀로 존재하거나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놓인 환경, 접촉하는 사물, 시간의 흐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됩니다. 시간의 변화, 사물의 소모, 흔적의 누적, 기억의 퇴적은 모두 생태적 작동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는 인식되지 않는 대상이나 다양한 조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태를 하나의 고정된 질서로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해체 그리고 조립이 반복되는 관계의 운동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태적 관계는 언제나 물리적이거나 가시적인 것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시선에서 소외된 존재들, 도시 구조에 적응해 살아가는 비인간적 대상들, 보호와 배제 사이를 오가는 모순적 조건들, 사라진 것들의 기억과 축적된 흔적 등은 모두 생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이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태는 존재 간의 거리, 서로 소통하는 방식, 그들의 사회적 시선과 위치에 개입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지속 가능성의 윤리와 공존의 상상력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이 섹션에서 마주하게 생태적 개념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형되는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남겨진 것들과 사라진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으로 기능합니다. 전시는 이 확장된 관점을 통해 존재와 존재 사이의 접촉, 교환, 순환의 감각을 구성하며 인간 중심적 질서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합니다.
관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놓인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조절하려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비인간 존재와의 접촉 역시 인간의 언어, 시선, 감정, 제도 속에서 정의되는데 결국 그 외부적 조율은 다시 인간 내부의 인식 체계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생태를 다루는 사유는 곧 인간 내부의 관계 형식에서 비롯되어 존재 간의 거리와 응답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정서를 통해 다시 구성됩니다. 생태적 인식이 외부의 조건을 해석하는 방식이었다면 관계는 그 해석이 인간 사이에 어떻게 적용되어 우리의 주변을 이루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관계는 흔히 개인 간의 접촉이나 정서적 유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넓게 보면 관계는 그 접촉이 일어나지 않은 자리, 타자와의 소통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대상과 이웃하는 것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속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근접성은 친밀함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반복되는 오해나 곡해는 관계를 유지시키기도 하고 해체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관계는 명확한 규칙보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의 누적으로 구성되게 됩니다.
더 복잡한 것은 이러한 관계가 대화나 합의, 이해를 전제로만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변수들이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는 특정한 관계 형식을 미리 설정하고 역할과 책임, 규범을 통해 관계의 질서를 고정하려 합니다. 어떤 대답은 기대되고 어떤 침묵은 용서받지 못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은 관계 맺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위치가 다르면 할 수 있는 대답의 형식도 달라지게 되고 그로 인해 형성되고 확장되어 가는 관계는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시는 이와 같은 관계의 작동 방식을 서로 다른 위치와 시간 안에서 어긋난 대답들이 어떻게 관계를 다시 구성해 나아가는지를 조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못한 말들이나 전달되지 않은 감정 그리고 역할과 책임 사이에서 생긴 간극은 모두 관계를 형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시는 관계를 일정한 규칙이나 합의로 완결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는 상태에서 조율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바라봅니다.
조망
'지금, 이곳'에는 작품이 없습니다.
예술발전소의 옥상은 물리적으로는 높은 자리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내려다보이는 공간입니다. 주체로서의 시선은 해체되고 타인의 창과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구조 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전시를 '보는' 입장이 아니라 '보이는 존재'가 되는 조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보다'라는 행위는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됩니다. 풀어내자면 조망은 응시의 행위라기보다는 그 응시를 가능하게 만든 위치와 조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다시 자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사라진 옥상에는 도시의 풍경만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누구인지 모르겠고 사물은 늘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도 경계는 흐릿하고 그래서 일상은 오늘도 반복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채 현재를 구성하고 있고 가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생태 속에서 관계를 조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지금까지 전시에서 사유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겹쳐지게 합니다. 보는 이의 위치, 보이는 존재로서의 자리, 어쩌면 우리는 환대를 받고 있을 수도 혹은 감시를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술은 서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늘 다음을 질문합니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왔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줄 알았던 예술과 예술가들은 이곳에도, 그곳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