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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026. 7. 15.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요원하다. 마음에 드는 제목이 보이면 책장에서 꺼내 본다. 괜스레 표지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첫 문장을 슬쩍 훑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책날개로 손이 향한다. “xx년 출생, xx대 졸업, xx상 수상.” 글을 읽기도 전에 저자의 이력을 먼저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든 저러든 책은 펼쳤다. 한 자 한 자, 한 줄 한 줄 바르게 읽으려 한다. 그런데 세 페이지쯤 지나자 방금 읽은 문장이 기억나지 않는다. 슬그머니 앞으로 돌아간다. 다시 읽는다. 괜찮다 싶으니 이번엔 궁금함을 못 이기고 뒤로 훌쩍 넘겨본다. 결말을 슬쩍 확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장에 다시 꽂아 둔다. 바르게 읽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세 페이지 만에 무너졌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읽기가 진짜로 작동한 순간은 오히려 그 무너진 지점에서였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앞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눈에 밟혔고, 뒤로 넘겨봐서 알게 된 결말이 첫 장면의 복선을 발견할 수 있게 했다. 순서를 어기고, 건너뛰고, 되돌아간 그 엉망진창의 읽기 방식이 되려 그 책을 더 깊이 읽을 수 있게 한 경로가 되었던 것이다.

교과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교과서가 가르쳐준 것은 순서대로, 또박또박,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따라가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그 태도만큼은 누가 뭐래도 옳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태도가 없다면 애초에 무너질 다짐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르게 읽겠다는 마음이 먼저 있었기에 어긋난 간극이 보였고, 그 어긋난 곳에 이르러서야 책이 말하려 했던 것과 말하지 못한 것이 함께 읽힐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을 읽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우리는 이미지를 슬쩍 훑고는 바로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고, 재료를 살피고, 옆에 붙은 설명을 한 줄 읽는다. 서점에서 책의 뒷면과 날개를 먼저 펼쳐보았던 것처럼, 작품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의 정보는 어떤지를 먼저 찾는다. 이 순서가 맞는지 틀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를 알고 나면 같은 작품도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결말을 알고 나서야 복선이 읽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바르게 읽기》는 작가를 먼저 읽으려는 전시이다. 구미청년상상마루 2기에 입주한 11명의 작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안고 이 레지던시에 들어왔는지를 먼저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시는 세 가지 독법을 제안한다. 행간, 기호, 문법. 우리가 글을 읽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여러 지점 중 세 가지 형식을 빌려왔다.

행간은 줄과 줄 사이의 빈 공간이다. 글쓴이가 적지 못했거나, 적지 않기로 한 것들이 그 안에 고여 있다.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행간이 읽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그 정보의 양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이 전시에서 행간이란, 작품의 표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관계를 가리킨다. 캔버스 위에 적혀 있지 않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비로소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다.

기호는 의미를 품되 의미 그 자체는 아니다. 빨간 신호등이 ‘멈춤’을 가리키지만 빨간 신호등 자체는 멈춤이 아니라 ‘신호등’일 뿐인 것처럼, 기호는 자신이 가리키는 것과 언제나 거리를 유지한다. 이 전시에서 기호란 작가가 세계를 서술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와 매체이다. 이 재료와 매체를 ‘왜’ 선택했으며, 또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말이다. 재료의 선택에는 작가의 사유만큼이나 취향이 묻어난다. 기호(記號)와 기호(嗜好)가 같은 발음이라는 사실은 우연이라기엔 꽤 적절하다.

문법은 글을 쓰는 동안 거의 의식되지 않는 규칙이다. 주어 다음에 서술어가 오고, 과거와 현재가 시제로 정렬되며, 접속사가 문장과 문장을 이웃시킨다. 서술되지 않지만 글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 전시에서 문법이란 작품이 작동하는 체계, 혹은 작품이 부딪히고 있는 기존의 질서를 가리킨다. 소비의 문법, 도시의 문법, 기술의 문법 등.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서 ‘무엇이 이 말을 가능하게 하는가’로 질문을 옮기는 것이다.

세 가지의 방식으로 작가를 읽었다고 해서, 11명의 작가를 바르게 읽었다고, 아니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과서가 약속했던 ‘바르게’의 결말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작가를 완전히 읽어 내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하는 일은 끝내 없을지도 모른다. 행간을 읽었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행간이 열리고, 기호를 짚었다고 생각하면 같은 기호가 다른 뜻으로 흔들리며, 문법을 파악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문법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돌아가고 뒤로 넘겨보았던 그 엉망진창의 궤적이 결국 가장 깊은 읽기의 경로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