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방법

평론김재홍2020. 10. 21.

‘je pense, donc je suis(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명한 이 문장은 데카르트가 이성적 사유와 주체성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명제이다. 데카르트의 논증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주체적 존재에 대한 사유로의 길을 연 것은 분명하다. 김재홍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주체적 존재에 대한 사유의 증명 방식으로써 접근한다. 검은 화면에 원(circle)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확한 형태의 원이 아니라 일렁이는 형태로 원에 가까운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대가(大家)가 오더라도 이론적으로 완벽한 원은 그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간의 오차를 가진 이것을 ‘원’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원’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고 있다.

김재홍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별적 존재자인 ‘나(작가)’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온 숙제인 ‘존재’라는 질문,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작가로서의 물음이다. 작가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도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원의 존재처럼 논리적으로나 현상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지만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각의 합이 180°인 사각형은 논리적으로나 현상적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내각의 합이 180°인 사각형’과 같이 문장으로 규정한다면 형태를 상상할 수 없더라도 관념적으로는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작가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증명하려 한다.

다른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고민의 흔적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존재의 기억> 시리즈나 <호흡의 결> 시리즈의 질문과 증명 형식은 그 결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존재의 기억>은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지만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볼 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있다. 그 형태는 작가가 영감을 받은 대상이나 사물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루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회화와 같이 형태나 형상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히 어떠한 대상과의 거리, 그것이 형이상학적이든 형이하학적이든 간에 적절한 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에 집중한다. 이렇게 가시적으로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형태는 ‘하늘거리며 부유하는 선’을 통해 구성된다. 

‘하늘거리며 부유하는 선’은 이보다 오래된 시리즈에서부터 발견되지만 <호흡의 결> 시리즈에서는 선보다 점에 가까운 형태로 드러난다. ‘점’ 혹은 ‘선’이라고 표현하기도 모호하다. 점으로 시작한 붓질이 선이라고 부르기 모호한 지점까지 확장된다. 어쩌면 ‘점’이나 ‘선’이 아닌 ‘면’에 가깝게도 느껴진다. 이러한 ‘점 혹은 면처럼 보이는 선’은 작가의 완전한 계획과 통제 하에 그려진 선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부유하고 있어 선들 각각의 간격을 통한 유기적인 움직임으로써 구성된다. <존재의 기억>시리즈가 작품과 타자(관객뿐만 아니라 작가까지 포함되는 작품 외의 모든 존재) 간의 거리를 지시했다면 <호흡의 결>시리즈는 화면 속 선들 간의 거리를 지시한다. 작가 스스로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선들은 스스로가 생명력을 부여받아 화면을 부유한다.  

이렇듯 김재홍 작가의 작업에서는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거리’ 그리고 ‘간격’이다. <존재의 기억>, <호흡의 결> 시리즈처럼 <내면의 빛> 시리즈도 같은 맥락에 닿아있다. 앞선 작품에서 확인했듯이 ‘거리’와 ‘간격’은 작가 스스로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중요한 맥락으로써 작동하고 있다. 다시 <내면의 빛>을 보면 화면 한가운데의 원을 중심으로 엷은 선들이 파장처럼 번지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원으로 완성된다. 파장은 굉장히 얇은 두께로 그려져 있는데,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작업 공정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적 프로세스는 ‘단색화’의 작업 방식과도 유사한데,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작업을 통해 한국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단색화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나’라는 사유를 풀어내려 시도한다. 그렇다면 <내면의 빛> 시리즈에서의 ‘거리’ 혹은 ‘간격’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내면의 빛>은 화면에서의 구도나 형태를 통해 거리나 간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거리’와 ‘간격’을 통해 구성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스스로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작업을 구상⋅진행하는데, 그 사유가 작업으로써 발현되는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1인칭의 ‘나’보다는 3인칭으로서의 ‘나’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하고자 시도한다. 그렇게 3인칭으로서 ‘나’를 바라보는 ‘나’는 하나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되며 나아가 무수히 많은 ‘나’를 생성시킨다. 원이 등분된 수많은 선들로 구성되어 있듯이, 수많은 ‘나’가 모여 하나의 원으로 치환되고 물음에 대한 파장들을 화면 위에 형상화한다.

세 가지 시리즈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김재홍 작가의 작업은 화면의 구성을 통해 어떤 객관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하나의 상징체로서 오롯이 작가의 사유 과정을 보여주며 회화의 본질을 건드린다. 물감을 섞고 캔버스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화가’라는 역할을 지시하고, 제작된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 견지하는 화가로서의 존재 의미 혹은 존재하기 위한 과정을 드러낸다. 이렇게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데카르트가 말한 ‘나’라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작업과정과 그 사유 자체를 지속시킬 수 있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즉 김재홍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작품을 이어가는 작가로서, 삶과 예술에 대한 근원을 작업으로써 질문하고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