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 부르는 환상의 에피소드

평론신도성2024. 10. 13.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를 몰아붙인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압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주체)를 찾으라는 끝없는 요구는 개인에게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내면의 공허와 불안은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불안과 공허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반응이다. 신도성 작가의 작업은 그가 겪은 사회 구조 속 불안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투영하려는 시도이다. 그는 현실과 환상, 꿈(사유)과 일상이 교차하는 장면들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심리적 긴장을 포착하고, 그 안에 숨겨진 불안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현실이라 부르는 환상의 에피소드”라는 작가노트의 첫 구절은 작가가 경험한 현실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나타내는 단서이다.

신도성 작가의 작업은 그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공황장애와 그로 비롯된 불안과 공허함에서 출발한다. 극심한 불안 속에서 그는 종종 현실 도피의 충동을 느꼈고, 이는 그의 예술적 탐구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설명한 것처럼, 불안을 인간이 맞닥뜨리는 존재의 근본적 조건으로 이해하고, 이를 예술적 탐구의 동력으로 삼았다. 불안은 그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마주해야 할(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방식이었으며, 그의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 작가가 꿈과 몰입의 세계를 통해 불안을 표현하려는 방식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말한 존재와 부재 사이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한 감정을 탐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작가는 이와 같은 불안정성을 작품 속에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지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공허함을 드러낸다. 이 과정은 다시 존재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예술적으로 내비치는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교차된 지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름, 자연물, 일상의 오브제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의 불안과 공허를 표현하는 메타포로 작동한다. 먼저 구름은 신도성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 불완전함과 존재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주요 상징물이었다.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부재와 존재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그러나 최근 작업에서는 구름보다는 동물들(사슴, 고라니, 부엉이 등)과 일상적 오브제가 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작가가 경험한 현실(실제)에서의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시골 생활 중에 마주한 자연에서 사유하며 구성된 이야기들이다. 이렇듯 작가는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다시 긋는다. 이는 꿈속에서 떠오른 형상들이 현실에서도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저에 깔아두었기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겠다.

이 가능성을 그려내는 방식은 침묵과 적막의 표현을 통해 구현된다. 작가는 특정한 서사나 감정을 명확히 밝히기 보다는 반복된 상징물과 절제된 색채로 감정이 유리된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논의한 ‘존재가 시간 속에서 드러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상기하게 하는데, 작가의 감정적 긴장감을 여백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존재의 불안정함을 묘사하려는 시도가 하이데거의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색채의 절제이다. 작가는 감정이 과도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색을 절제하고, 구성을 간결하게 유지한다. 절제된 표현 방식을 통해 인간이 자유 속에서 느끼는 부담감과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공허함의 형용은 하이데거에 이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가 ‘실존적 공허(존재의 무(無))’라는 사유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가 텍스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 경험에서 도출되었다는 점은 그의 작품을 더욱 진솔하게 만든다. 

절제와 제한하는 표현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서사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된다. 색채와 감정의 절제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경계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는 작업에서 존재와 부재의 모호함이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지점인데, 이러한 경계는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 말한 상상계와 실재계의 충돌과 유사하게, 현실과 환상이 흐릿해지는 지점으로 드러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상징화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 자리한 ‘실재(Real)’는 완전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며, 이로 인해 불안이 발생한다. 신도성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이 불안은 기시감과 함께 나타난다. 일상에서 경험한 장면들이 왜곡되거나 반복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심리적 불안과 경계의 모호함이 형성된다.

정리하자면, 신도성 작가의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안과 공허를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표출하는 데에서 출발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단절과 긴장을 그만의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공허,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하는 감정적 균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써내려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