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색된 세계
평론지은주2024. 5. 11.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다양한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로 인해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구조와 가치관, 인간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이와 같은 발전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람들의 삶의 질에 있어 긍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둡고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중 가장 커다란 측면이 현대인이 지니는 스트레스와 불안일 것이다.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작동하는 사회구조의 톱니바퀴 안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치유와 안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은주 작가는 이와 같은 사회와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내적 풍경과 치유"를 작품의 주요 주제로써 다뤄왔다. 그동안 작가는 한국의 상징적인 소재들을 활용하여 작업을 이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대나무를 활용하여 내적 풍경의 표현을 시도한다. 대나무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소재로서 고요와 정신성, 군자로 대변되는 철학적 사유와 태도 등의 이미지와 이웃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에서 ‘대나무’라는 소재는 이와 같은 은유가 보편적으로 공감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회화 안에서는 그 의미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으나, 사회적 관점에서는 이미 유리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이른바 전통이 상실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사회와 전통을 끝끝내 분리시킨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더욱 희미해져갈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러한 대나무의 이미지를 통해 전통과 현재를 꿰매고 그 안에서 안정과 치유라는 내적 공간 탐색을 시도한다. 풀어내자면 지은주 작가의 작업은 대나무를 통해 동양의 전통적인 미학과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있는데, 전통을 기반에 두되 현대인들이 일상을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적 공간을 형성하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은 작가는 대나무를 단순히 전통적인 미학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대나무가 지닌 전통적인 의미를 그대로 이어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의미와 함께 스스로 재해석한 상징성을 부여하여 상징체로서의 진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는 산과 으슥한 곳에서 흐르는 계곡은 동아시아 문화의 영혼을 담아내는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심산유곡의 상징성을 가져와, 불안함 가득한 현실에 거주하고 있는 현대인의 내면에 모종의 휴식처를 제공하고자 한다. 속이 비어있는 대나무 속이 마치 프라이빗(private)한 공간을 은유하는 듯이 지은주 작가의 작업은 관객이 자연의 내부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장치해두고 있다. 이는 작가가 대숲에서의 산책과 명상을 통해 얻은 영감이 창작의 배경이 됨과 동시에 정신적인 안정 또한 제공받은 중요한 공간이었기에 작품에서 표출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특별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도자라는 형식(매체)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소재들에 이어 도자 또한 마찬가지로 수 세기에 걸쳐 꾸준히 발전해 온 전통적인 미술 형식 중 하나이다. 이러한 도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와 수천 년을 함께 해온 생활방식이자 삶의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이지만, 이 도자에도 앞서 서술한 동시대의 문제적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품의 목적이 ‘실용성’에 있다는 이유로 순수미술에서 배제당한 공예가 그렇지 않았던 동아시아에서도 점차적으로 배척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 또한 우리의 현실이 전통과 유리되어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지은주 작가는 공통분모를 가진 도자라는 매체를 굳이 선정하고, 작업의 메커니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날의 미술은 기존의 공예가 배척받던 것에 반해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지은주 작가의 시도는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실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지은주 작가의 작품을 보자면, 현대 사회의 문제와 이슈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주 작가는 현대 사회의 너무나도 일상적이지만 그렇다고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와 문제를 다루면서 예술의 역할과 가능성 그리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일 수 있겠으나 예술은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자연의 그것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듯이 작가 또한 본인의 작품이 관객에게 치유와 안정을 제공하며, 나아가 예술이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만큼 관객은 본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만이라도 한유할 수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