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NARRATIVE
평론서이2023. 10. 4.
현대미술의 요소 중 가장 커다란 특징은 전통적인 예술작품이나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 대해 반론적 입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 즉 아방가르드 예술이 전통적인 예술의 형식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완벽함에 대한 의심 그리고 부정적 태도가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작가들과 예술은 견고한 전통적인 예술의 시각적 순수성과 고유성에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었고, 그 결과 새로움 다시 말해 예술이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발자취를 곁에 두고 서이 작가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부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 왔다. 순수예술이 아닌 토목공학을 전공한 서이 작가는 다양한 이유들로 인하여 순수예술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곧 자신만의 서사를 차근차근히 또한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의 서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반복되는 도형 패턴 그리고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기하학적 무늬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은 일견 옵아트(op-art, optical-art)적인 형상을 띤다. 옵아트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미술의 한 동향으로써 기하학적 형태나 색채의 장력(張力)을 이용하여 시각적 착각을 다룬 미술이다. 원근법상의 착시 혹은 색채의 장력을 통하여 순수한 시각 상의 효과를 추구하는데 평행선이나 바둑판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색을 병렬시켜 화면 위에서 묘한 긴장상태를 유발한다. 이러한 옵아트는 이후 디자인과 패션 나아가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지만 옵아트의 예술세계는 심미적 경험 외에 지적(미학적) 사고와는 관련이 적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확장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서이 작가는 이러한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그리고 비교적 오래전의 형식을 차용하여 작업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의 정체성 구축하기 위함에 있는데, 풀어내자면 옵아트는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서이 작가의 맥락(context)을 보다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옵아트의 특징 중 하나는 구성주의 혹은 형식주의적 추상미술과는 달리 모종의 사상이나 정서와는 무관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까닭도 있겠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형식이 가미된 서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minimal-art)적인 성향도 드러나는데, 이것 역시 작가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미니멀리즘 역시 1960년대에 등장한 미술사조로써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했으며, 이미지와 조형요소를 최소화하여 기본적인 구조로 환원시키려 시도하였다. 즉 원형이나 정육면체 등의 단일 입방체의 사용과 같은 규격의 크기 그리고 단색의 사용을 통해 단순성, 명료성, 반복성, 사물성, 순수성, 조형성 등의 개념을 구축하며 반예술(anti-art)적 태도를 지향하였다. 여기서 서이 작가가 미니멀리즘에서 끌어오는 맥락은 옵아트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모든 작업 구상이 의도부터 결과까지 철저한 계산 하에서 완료된다는 점과 옵아트와 조금은 다르지만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려 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미니멀리즘 스스로가 많은 맥락들을 제거해 가며 구축한 사물의 의미 없음은 곧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과 맞닥뜨리게 되는 맥락까지도 서이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집어넣어 새로운 서사를 쌓는다.
이와 같은 작가의 서사와 맥락을 짚고 다시 서이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많은 정보들이 작품에 드러난다. 작품의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정사각형과 원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가득 차 있는 이미지와 이러한 패턴이 끊기거나 도형 내부에 색이 없는 요소들이 간헐적으로 있는 이미지들이다. 전자는 앞서 설명한 옵아트의 형식을, 후자는 옵아트의 형식에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얹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사각형과 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알아보아야 하는데, 서이작가는 자신만의 서사를 구축함에 있어 미술의 맥락을 차용하여 온 것처럼 이미지에 녹아있는 정사각형과 원 또한 미술사적 맥락을 차용한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정사각형은 인간의 사유와 기술로 만들어낸 국가, 사회, 도시, 예술 등의 결과물을 지시하고 원은 자연을 지시한다. 이는 몬드리안(Piet Mondriaan)이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진 직선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연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언급을 차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이미지에 드러나는 정사각형과 원이라는 두 요소는 서이 작가의 세계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이미지를 보면 이러한 작가의 세계가 무수히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반복은 없으며 오히려 반복이 차이(예술)를 만들어낸다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예술이론을 근거로 봤을 때, 서이 작가의 반복되는 패턴은 일종의 '일상'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이 일상의 기호가 패턴화되어 작품이 되는 것으로 서이 작가의 반복 패턴은 예술가로서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맥락들을 종합해 보면 서이 작가는 본인이 살아온 환경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찾아내고 그 예술을 구축하기 위한 여정을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미술이 전통적인 예술의 정적이고 관념적인 형식들을 부정하려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부정성을 통해 오히려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질문에 집중한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자신의 일상에서 고착된 형식과 태도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미 작가는 작품의 다음 형식들을 준비해둔 상태이지만 급하게 드러내지 않고 치밀한 논증적 태도와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예술적 서사를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