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산책하며 이미지를 수집하다

평론스티븐 데이너2017. 10. 8.

‘검은 것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니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는 적혀진 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평소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농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문맹률이 1%대인 한국과 어울리는 농담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이와 같은 농담이 생긴 이유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즉 읽고 쓰기 어려운 문자의 구조를 띄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담의 실제적 체험을 원한다면 생소한 문화권에 여행을 가게 되면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생소한 문화권에 여행을 가서 식당을 찾는다고 가정을 한다면, 간판이 달려있는 전형적인 식당의 형태를 보고 식당이라는 인식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음식점인지, 술집인지, 카페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간판에 적혀있는 문자언어가 생소하고 의미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법칙들로 인해 쓰였다는 것은 인지하지만 어떠한 정보도 없기 때문에 단지 이미지로만 남게 된다.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이고, 흰 것은 종이가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단순히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형태를 생각해본다면 비유적 방식을 통해 상징적 형태로 의미를 드러내는 것들이 있겠다. 어떠한 사회적인 현상이나 사건들을 신문 기사와 같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 방식, 즉 은유, 의인, 의태 등의 방식을 이용해서 고급스러운 사유체계를 향유하는 방식들이다. 이러한 형식의 문자들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그 문자가 속해져 있는 문화적 이해나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이해까지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피상적으로 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문자와 문장에서 찾을 수 있는 비유와 상징들을 즐길 수 있다.

스티븐 데이너(Steven Dana)는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태도를 모두 취하고 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예술가로서 뉴욕에서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대구 영남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뉴욕과 대구에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인인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기에 당연히 미국적 정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한국적 정서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인데, 예컨대 한글이나 한국어가 가장 큰 장벽일 것이다.  스티븐의 작업을 보면 이러한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인 《삶, 풍경의 조건》을 위해 그는 대구에서 뉴욕으로 직접 건너가 미국적인 모습에 대해 작업을 하고, 다시 대구로 넘어와 한국적인 모습에 대해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 두 장소에서 작업한 결과물들은 위에 언급된 내용과 같은 차이를 보여준다.

〈America 5 Por $4〉에서는 미국의 문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인종의 문제나 미국 내 멕시칸과 감옥에 대한 문제, 영어와 스페인어의 혼용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상징적 이미지로써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나 현상들에 대해 작업하여,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목격한 것을 기록하는 태도로 작업한다. 또한 〈Public School Cafeteria〉에서도 미국적 정서를 다소 비추는데, 레드와 블루의 색 그리고 별들은 미국의 성조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도 여러 인종에 대한 상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다른 미국에서 작업한 작품들을 보더라도 하나하나 상징적 요소를 입혀두었다. 이러한 방식들은 어린아이들이 어떠한 것들을 그린 후 이건 누구다, 저건 무엇이다, 하며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스티븐이 예술, 회화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아주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형식으로써 예술에 접근한다. 미국의 예술가 에드 루샤(Ed Ruscha)는 “우리 시대의 진짜 풍경은 기호와 상징, 그리고 얼룩이 함께 엮인 리본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스티븐 또한 이와 같은 입장과 태도를 지니는데, 다시 말해 그는 해석이나 판단 등을 일선 뒤로 미루고 감각을 표면위로 올리려는 것이 그의 작업방식이다.  한편, 〈51〉에서는 ‘전화번호’가, 〈Maserati〉에서는 ‘돈’이라는 글자가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티븐이 미국의 일상과 한국의 일상에 있어 비슷한 풍경 중 하나로 경험한 것은 누군가와의 첫 대면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였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보이는 이색풍경 중 하나는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헬멧을 깊게 눌러쓴 남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명함을 일방적으로 뿌리는 것이었다. 작품의 ‘전화번호’와 ‘돈’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 명함들은 바로 ‘일수명함’인데 스티븐에게는 그런 풍경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색적 경험을 토대로 그 명함들을 수집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명함에 적힌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저 이미지로 차용하여 작업에 옮겨낸다. 문자가 가진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이미지로써만 접근하는 것이다. 때문에 본래 모티브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스티븐만의 감각적 작업이 캔버스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티븐의 작업은 읽히는 것과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한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나, 한국에서의 작품과 미국에서의 작품들은 결국 같은 태도와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읽히는 것, 그리고 읽히지 않는 것들의 정보들을 편식 없이 취하고 자신만의 감각적인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의 상징적 요소들은 관객에게 해석욕구를 자극하여 던져진 이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다시 말해 그가 일상에서 산책하며 수집하는 이미지들은 그에게는 더 많은 상징적 소재로써의 영감을 주고 관객에게는 그것과 비례되는 해석욕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