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평론강혜진2021. 11. 1.
다원론적 세계와 야기되는 질문들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자연은 그 순리와 법칙을 갑자기 바꾼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멈춘 적도 없었다. 이 세계의 시작과 끝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이 순리와 법칙이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귀납적으로 유추한다. 하지만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이 세계는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만큼 변화하였다. 변하지 않는 세계가 변화했다고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사유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는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여 보기도 했고, 일원론적으로 통합하여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는 다원론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식은 180도 달라지고, 또 세계는 그에 맞춰 변화한다. 다시 말해 인식의 방식은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 행동양식 등 모든 요소들을 변화하게 한다.
강혜진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다원론적 세계관을 기준으로 하여 미시적으로 접근한다.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세계를 이해했던 이전 세대들의 이원론적 방식은 아직도 우리 생활양식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함으로써 필연적으로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수하고자 새롭게 다원론적 세계를 구축하였지만, 아직도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주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이 있다는 이 다원론적 세계관은 작업에 있어 중요한 뿌리가 된다. 다원론적 세계가 이원론적 세계에 기반을 두듯이, 작가 또한 이원론적인 세계의 핵심이었던 주체와 객체의 문제로 시작한다. 즉, 주체의 개념이었던 ‘나’와 객체의 개념이었던 ‘여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이원론적 메시지를 넘어, 다원론적 메시지로 확장시킨다. 풀어내자면, 이원론적 세계에서 열등한 성별이었던 ‘여성’은 다원론적 세계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자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러한 미묘한 지점을 발견한 강혜진 작가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닌, ‘여성’인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아포페니아적 연상과 소통
중심이 다양하다는 것은 개개인의 사유들이 충돌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혹은 곡해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강혜진 작가는 이러한 정보의 굴절을 아포페니아적인 작품들을 통해 드러낸다. 아포페니아는 불규칙하고 연관성 없는 정보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추출하려는 인식작용인데, 쉽게 말해 달의 표면을 보고 방아를 찧는 토끼를 연상한다거나, 별의 위치를 통해 연관지어 별자리를 상상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아포페니아적인 연상을 작가는 성적인 요소와 병치시켜 작품으로 표현한다. 잡지를 오려내어 여성의 성기 혹은 꽃을 연상하게 한다거나, 젠가의 ‘빼고’, ‘넣고’, ‘세우는’ 방식에서 성관계를 연상케 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아포페니아적인 연상을 함에 있어 그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인간의 형상, 그리고 성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면은 인간의 인식과 욕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요소를 차지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련된 이미지로 연상이 이어지지만,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개개인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성적 형상으로 연상되지만, 사회가 규제 혹은 권고하는 분위기와 개인의 사유가 충돌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세계의 불완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는 다양한 관점들을 수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규제하여 겉과 속이 다른, 솔직하지 못한 사유체계를 강요한다. 그리고 이는 건강하지 못한 세계임을 방증한다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세계의 불완전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그렇다하더라도 작가는 특정한 정보를 향해 관객을 일방향적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연상된 내용과 관련하여 도출된 생각들을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소통의 실험을 우선한다. 이번 《Dance》展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이러한 아포페니아적인 작업들로써 관객에게 소통을 시도한다. 시각적 이미지가 특징인 〈모종의 음모 같지 않아요?〉는 비교적 이미지가 쉽게 연상되지만, 반면 〈완벽한 퍼즐〉과 〈Jenga〉는 그리 쉽게 대상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퍼즐이라는 특성, 그리고 젠가 게임의 행위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강혜진 작가의 사유 영역으로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박자가 맞아야 해〉라는 작품이다. 메트로놈이라는 오브제를 어떠한 공정과정 없이 기성품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두 개의 메트로놈이 평범하게 각자 소리를 반복해서 낼 뿐이다. 〈박자가 맞아야 해〉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여러 내러티브를 제시하지만, 아포페니아적인 부분에서는 제목과 주변 작품들을 기인하여야만 작가의 사유 영역으로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이유는 공간 전체를 이웃짓는 교두보 역할을 함에 있다. 작품들은 박자에 맞춰 춤추듯 서로 공명하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구축한다. 비로소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관객에게 함께 춤추기를 제안한다.
댄스
전시 《Dance》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춤을 추려한다. 댄스, 즉 춤의 기원은 최초의 언어적 행위, 인류가 행한 의사소통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Dance’는 생명의 욕구, 일상생활의 경험과 환희를 표현하는 율동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넓은 의미로써의 춤은 욕구, 감정 등을 표출하는 기본적인 의사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는 그 어원적 의미를 차용하여 상호간 소통함을 의미한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강혜진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관객의 사유 확장을 시도하는데,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은유하고 여기에서 확장되는 생각들, 그리고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수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세계인가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원론으로 실패된 세계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태어난 다원론의 세계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언제나 대상을 해체하고 질문하며,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강혜진 작가는 제안하며 질문한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세계가 어떤 세상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