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면
평론정욱2018. 9. 29.
현대 사회는 소비를 통해 굴러간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이러한 현대 사회를 두고 ‘소비사회’라고 규정하였다. 공산품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호들이 대량 생산되고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구조는 현대의 단면을 명확히 비추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현대를 반영하는 주요한 맥락중 하나는 ‘일회성’이다. 사용됨으로써 그 수명을 다하는 일회적 요소들은 현대 사회의 여실히 보여준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들처럼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직업들이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도시의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일회용 인간’이나 ‘도시 유목민’들의 삶 속에서 쓰고 버리는 일회적 요소들은 우리 사회에 너무도 넘쳐나고 있다. 우리는 버리는 것에 익숙한 시대에 버려져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반목일까. 정욱의 작업은 이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버려지지 않도록 장치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전의 작업에서 우유의 빈 갑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세제 통, 플라스틱 의자 등 일반적으로 경제가치가 적은 공산품들을 캐스팅하여 세라믹으로 구워내고 색을 입혔다. 본래의 사물에 가깝게 묘사하여 원본의 조형적 요소를 재구성하는데 집중했다. 원본 이미지와 외형만 같을 뿐 구성되는 재료나 성질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가공되는 것이다. 정욱의 작업은 복제되어 대량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어 사라지는 공산품에 노동력을 기반으로 획득되는 원본성을 집어넣어 사물의 가치를 역전시킨다. 즉 버려지는 사물에 ‘영구보존’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새로운 작업에서 정욱은 일회용접시를 이용한 작업을 통해 버려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집중하는 한편, 무심한 시선, 즉 보지 않는 혹은 볼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한 시선으로 작업을 확장시켰다. 작업방식은 이전과 같이 일회용접시를 캐스팅하여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구겨져있으면 구겨진 채로, 찢어져 있으면 찢어진 채로, 어떤 모습이든 되는대로 찍어낸다. 접시를 대량으로 굽는 과정에서 부서지는 것들도 생기지만 그것도 그대로 가져온다. 색 또한 제거된다. 이렇게 구워진 작업들은 접시의 아랫면이 전시된다. 본래의 접시가 가진 기능을 완전히 제거시키는 것이다. 이전의 작업은 원본을 재현해나가는 작업이었으나 이번 작업은 그 원본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복제하는, 즉 시뮬라크르(simulacre)의 형식을 보여준다. 디스플레이에서는 시뮬라크르적 형식 역시 잘 드러나지만 뒤집어진 접시의 아랫면을 통해 평소에 보지 못했던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뒤집힌 접시들이 공장의 레일이 연상되는 모습으로 같은 간격을 두고 길게 늘어져 놓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접시 아랫면의 무늬 패턴이 몇 가지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회용접시를 사용하면서 보여진 무늬들을 따로 기억하거나 반응하지 못한다. 그 무늬가 미적 형태나 목적을 지니더라도 그것이 실용적 목적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정욱은 이렇게 무심한 지점에 있는 요소들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맥락을 결합시켜 새로운 혹은 발견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대해 서술하려 한다.
정욱의 작업에서 읽히는 요소들은 일상에서 기인하는데, 여기서 일상은 서두에 언급된 ‘도시의 유목민’이나 ‘일회용 인간’과 같은 맥락에 있다.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이사라든지 학업을 위한 이사, 작업실 이전 등 여타의 이유로 노마드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불안정한 수입들은 일회용품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일상의 사물들을 관찰하며 작업이 이어졌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말한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자(Flâneur)처럼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관찰하고 발견하였고 작업으로 옮겼다. 그렇게 일상적인 사물이나 사건의 접촉과 상호작용이라는 지점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스스로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자신이 볼(봐야 할) 무엇인가를 찾아 끝없이 배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