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삐걱
칼럼2020. 4. 30.
‘세상이 멈춘 것 같다.’
지난 몇 달간 들었던 생각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는 지난 2월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그 유행의 시작 지역은 대구였다. 기하급수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자가격리(혹은 자발적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통해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당연히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의 생활 반경인 미술관, 갤러리 등 각종 전시 공간은 문을 닫았고, 학교 역시 교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전시 관람, 강의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당연히 작가들과의 만남 또한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생활이 지속되면서 말 그대로 세상이 멈춘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지난 한 해는 굉장히 공사다망한 해였다. 한 해 동안 직접 기획하거나 관여했던 프로젝트를 세어보니 23회나 되었다. 2019년 4월, ‘수창청춘맨숀’에서의 《청춘! 아팝트Ah, popped》를, 6월에는 대형 프로젝트였던 《스테어스 아트페어》를, 연말에는 ‘시안미술관’에서의 《from A to B》를 기획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유니온 아트페어》, 울산에서의 《사자울》, 경북 의성에서 《예술의성 프로젝트》 등 여러 지역에서 초대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수년간 진행되어 온 ‘비영리전시공간 싹’의 《싹수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며 여러 작가들을 만나 함께 작업했었다. 많은 전시를 기획했지만 그중에 가장 재밌었고 지속하고자 한 프로젝트는 ‘비영리전시공간 싹’에서 진행한 《스테어스 1-11 프로젝트》이다. ‘1-11’이라는 명칭은 매달 1일에서 11일까지 전시를 한다는 약속인데, 4월에 시작해 12월까지 총 9회에 걸쳐 진행했었다. 정말 쉼 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자 몸에 무리가 왔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 해 동안 열심히 했구나’라는 뿌듯함으로 견뎌내며, 2020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스테어스’의 멤버들, ‘비영리전시공간 싹’의 선생님들과 함께 2020년 한 해 계획을 구성했다.
‘비영리전시공간 싹’에서도 지역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 기존의 신진작가 발굴과 더불어 신진비평가 양성을 목표로 작가 공모와 비평가 공모를 낸 것이다. 이에 많은 신진작가, 신진비평가들이 지원했지만 심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일정을 기약하고 있다. 한편, ‘스테어스’에서는 ‘청년 예술가’와 ‘신진 예술가’의 조합을 통해 청년 세대(20대와 30대) 간의 교류를 목표로 한 《스테어스 1-11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었다. 매달 이뤄져야 하는 프로젝트 특성상 전시는 미루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전시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저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결국 전시는 3회 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4월 중순으로 들어서자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듦과 동시에 사회도 삐걱대지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멈춰버린 세상도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멈춰진 기간 동안의 나는 ‘시안미술관’의 큐레이터직을 맡게 되었고, 《스테어스 1-11 프로젝트》도 상황에 맞춰 일정을 수정하는 등 멤버들과 프로젝트의 틀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움직이며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작가들은 작업실에만 있으니 작업량이 늘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무거운 사회 분위기로 인해 작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작업이 시간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안미술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기획했던 《from A to B》 전시가 반응이 좋아 전시 기간을 연장하였으나, 관람객의 발길이 끊겨 연장의 의미가 없어졌다. 이후 《Post Classical : Ceramic》이라는 전시가 따뜻한 봄 날씨에 새로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람객의 수는 늘지 않고 있다. 시안미술관의 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었으나 올해는 너무나 조용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많은 일정들이 미뤄지고 있는 만큼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순간, 그동안 선보이지 못했던 많은 작품들이 예술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상반기 중으로 종식된다면 하반기에는 쉴 틈 없이 행사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작가들에게는 전시장을 섭외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너무 많이 겹치는 행사로 인해 충분한 시간 동안 전시하는 것이 아닌, 밀린 일정을 급급히 쳐내는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관객들 역시 하나하나 챙겨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계에서 코로나19의 후폭풍은 이러한 형태로 올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다. 여전히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안정화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으로 안정화가 되어야 진정한 종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면 안 될 시기이기도 하다. 사고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보다, 익숙해지고 긴장이 풀렸을 때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현재 상황은 유의미하게 바라볼 수 있겠다. 나는 삐걱대는 톱니바퀴에 조심스레 기름칠을 하듯 예술계가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