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불라 라사-하얀 방

서문Tabula Rasa: The White Room2023. 9. 9.

타불라 라사: 하얀 방(Tabula Rasa: The White Room)

오늘날 한국은 해외로 유통되는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K’라는 접두사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K-POP’, ‘K-드라마’, ‘K-푸드’ 등의 다양한 매체가 이른바 ‘K-컬쳐(culture)’라 명명되어 소비되고 있지만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란 불가하다. 각각의 매체가 가지는 개별성은 무시하고 서두에 ‘K’만 붙여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표면적인 의미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 매체가 가지는 전통 혹은 철학적 담론이 배제되어 있거나,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문화의 특성과도 배반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미술 역시 ‘K-Art’라는 이름 아래 가벼운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시안미술관은 이번 전시 《타불라 라사: 하얀 방》을 통해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한국미술의 특징이나 성질을 하나로 정의하거나 구축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미술, 그리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예술적 이념이나 형식들에 대해 끊임없는 부정과 의심을 토대로 각각의 개별성을 탐색하고 한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미술계는 끊임없이 한국미술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다. 전통적인 한국의 정신성으로부터 그 사유를 강구하기도 하고, 미술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들 간의 형식을 묶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술인들이 한국만의 사조를 구축하는 것에 의심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초국가적인 예술의 무한함과 그 가능성을 부단하게 찾아가기 위함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불라 라사: 하얀 방》은 동아시아 예술에서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여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개념을 이어 논지를 끌어가려 하는데, 이것은 동아시아 특유의 여백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동시대에서, 그리고 동시대 예술계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오늘날의 예술에서 유의미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이자 실험이다. 타불라 라사는 ‘빈 석판(백지, 빈 방)’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근대 철학자 존 로크가 자신의 철학적 담론을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한 단어이다. 타불라 라사는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선입견이나 지식, 타고난 특성이 전혀 없는 깨끗한 석판(종이)과 같은 것인데,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는 경험과 교육 그리고 수많은 내·외적 영향들이 인간의 지성을 형성시킨다는 논지이다. 이러한 개념을 차용하여 구성한 ‘하얀 방’은 이번 전시에서 앞서 서술한 ‘여백’이라는 개념과 이웃하여 작동한다.

하얀 방은 소위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고 불리는 미술관 혹은 미술 제도권을 상징하는데, 미술사적 맥락에서 화이트 큐브는 때로는 부정적인 형태로, 때로는 우호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하얀 방은 ‘타불라 라사’적인 공간이라는 형태로 읽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다시 말해 《타불라 라사: 하얀 방》은 기존의 전통적인 개념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하고 확장하는 공간, 즉 타불라 라사가 실체화되어 깨끗하고 중립적인 공간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하얀 방’에서 예술과 관객이 마주함으로부터 발생하는 물리적·사유적 여백은 모종의 관계로 이웃되어 새롭게 생성될 무수히 많은 사유를 그려낼 캔버스가 된다. 이러한 의도를 구체화하고 확장하기 위해 전시에는 색이 없는 무채색 계열의 작품, 그리고 평면적인 작품만이 제시된다. 그러나 전시에 참여하는 권오봉, 김호득, 민재영, 박세호, 박창서, 박철호, 신경철, 심윤, 유주희, 이배, 좌혜선, 홍성덕 작가의 작품은 모두 각각의 내러티브를 담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색을 제거하고 검은색만 있는 팔레트를 공유하여 전시를 구성한 것은 공통적인 어떤 조건을 통해 예술이 지니는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전시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색의 부재와 형식의 통일은 제한 혹은 제약이 아니라, 각 작품에 담긴 고유한 내러티브를 관객으로 하여금 객관성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써 작동된다. 때문에 관객에게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미묘하고 무한한 뉘앙스(nuance)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관객은 이번 전시에서 그저 관람자의 역할만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하얀 방을 배회하며 여백을 만들어내는 퍼포머(performer)의 역할도 부여받는다. 이로써 관객은 전시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관객과 예술 그리고 공간의 상호적 관계를 은유하게 됨과 동시에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한다. 즉 하얀 방을 거니는 관객은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메워지고 비워지는 흰 색의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작품과 작품 간의 거리, 관객의 위치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여백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풀어내자면 전시는 관객에게 검은 옷을 착장하기를 제안하고, 관객은 이를 수용하면서 작품과 관객은 하얀 방의 전시 조건을 동일하게 충족시키게 된다. 이것은 수많은 서사를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이 작품으로서 공간을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한국미술의 특징을 하나의 맥락으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데, 이것은 ‘K-Art’와 같이 의미가 제거된 용어를 통해 한국미술을 뭉뚱그려 마케팅하려는 것에 대해 경계하거나 부정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개별적인 것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정의하는 것이 더욱 새롭고 다채로운 예술, 나아가 한국만의 예술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출처(참고문헌) :


연결문서 :

  • [[]]